곤충의 눈으로 본 세상

곤충의 왕

podys 2008. 11. 11. 21:26

곤충의 왕은 어떤 녀석일까요?

 

크기로 따진다면야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무거운 장수하늘소가 될 테지만 크다고 무조건 왕이 될 수는 없겠죠.

어른 손바닥 만한 대왕박각시도 크기로 따지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고, 왕사마귀도, 장수잠자리도 꽤나 덩치가 큰 편이지요.

 

곤충 좋아하는 인구도 많고 특유의 엽기성까지 가지고 있는 일본의 충왕전을 보면 장수풍뎅이를 싸움꾼으로 만들어 싸움을 시키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은 왕귀뚜라미를 길러서 우리나라 소싸움시키듯 싸우게 만들고 있지요.

 

실제로 곤충들끼리 싸우는 모습은 자연에서 잘 볼 수 없습니다.

 

사냥을 하는 장면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싸우는 모습은 몇 년 곤충관찰을 하면서도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릴 때의 호기심이 아직 남아서인지 간혹 곤충끼리 싸운다면 최종 승자가 누가 될까 하고 궁금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날카로운 앞발을 가지고 사냥을 업으로 삼고 있는 왕사마귀가 왕좌를 차지하게 될까요?

그런데 왕사마귀도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한테는 어쩐지 힘에서 밀릴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장수말벌이 왕좌를 차지할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릴 때부터 가져온 벌에 대한 공포감 때문만이 아닙니다.

간혹 장수잠자리한테 잡아먹히는 장수말벌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는 하지만 장수말벌의 침을 당해낼 곤충이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이녀석들은 턱도 매우 강해서 손을 물면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아프답니다.

 

더구나 이들은 사회성 곤충이라서 떼로 덤벼들면 사람도 당해낼 수가 없지요.

 

 

 

 

장수말벌은 봄에 월동에 성공한 여왕벌이 집을 지으며 군사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다른 곤충을 공격하기도 하고 심지어 거미줄에 걸린 곤충을 약탈까지 하면서 먹이를 가져다 여름을 지나며 커다란 군집을 만듭니다.

결국 모두 형제로 구성된 대가족이 만들어지면 이들은 자연계에서 매우 공포스런 존재가 됩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이들 장수말벌에 쏘여 죽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뱀에 물려 죽는 사람보다 이녀석들에게 당해서 죽는 사람들이 훨씬 많답니다.

 

이들이 새끼를 한참 키울 때 가장 필요한 먹이는 바로 단백질이랍니다.

그 단백질의 상당부분을 사냥을 통해 충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꿀벌집을 습격해서 벌통 속에 있는 꿀벌 애벌레와 꿀을 약탈해 먹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다른 말벌집이나 심지어 거미를 사냥하기도 합니다.

 

장수말벌 서너 마리가 꿀벌집에 들어가버리면 한두시간만에 꿀벌통 하나가 전멸되어버립니다.

허리가 뎅강 잘린 꿀벌 사체가 한 바가지는 넘게 나옵니다. 꿀도 모조리 먹어치우고요.

 

여름철 양봉을 하는 사람들이 항시 꿀벌통 옆에서 불침번을 서는 이유가 장수말벌 때문이랍니다.

꿀냄새를 맡고 날아온 장수말벌 한 마리를 잽싸게 잡지 않으면 녀석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꿀벌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지요.

정탐꾼 장수말벌이 꿀벌집에 페로몬으로 표식을 해두고 가거든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장수말벌한테 당해서 꿀벌이 벌써 멸종되었어야 할 것 같은데 어찌 살아남았을까요?

지금이야 양봉업자들이 불침번을 서고 있으니 괜찮겠지만 사람이 보살펴주기 훨씬 전엔 이들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알쏭달쏭한 문제이지만 답은 의외로 쉽게 풀립니다.

 

꿀벌을 다른 말로 양봉이라고 합니다. 

이 양봉은 원래부터 우리나라에 있던 녀석들이 아니라 외국에서 들여온 종이랍니다.

이 꿀벌이 살던 곳에는 장수말벌이 살지 않았고요.

그러니 장수말벌이 침입해들어오는 것에 대해 무방비상태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또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원래 있던 재래 꿀벌은 어떻게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일까요?

 

장수말벌은 재래꿀벌이고 양봉벌이고 가리지 않고 약탈을 일삼습니다.

더구나 재래꿀벌은 양봉벌보다도 덩치가 작고 약합니다.

그런데도 살아남았다는 것은 참으로 아리송한 일입니다.

 

장수말벌 한 마리가 약탈할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정탐을 떠납니다.

이들이 정탐을 할 땐 떼거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한 마리씩 달콤한 꿀 냄새를 따라 이리저리 날아다니지요.

그러다 꿀이 가득한 꿀벌집을 찾아냅니다.

꿀벌집을 찾은 장수말벌은 집으로 돌아와 동료들을 이끌고 방금전 보아두었던 꿀벌집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재래꿀벌은 염탐하러 온 장수말벌을 자기 집으로 유인해 끌고들어갑니다.

그리고는 모든 벌이 합세해 장수말벌을 둘러 싸지요.

그리고는 맨 아래에 깔려 있는 장수말벌의 몸에 자신의 몸을 마구 비벼댑니다.

 

장수말벌은 체온이 46도가 넘어가면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재래꿀벌은 48도~50도가 되어야 죽지요.

재래꿀벌들은 장수말벌의 체온이 올라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몸을 비벼대면서 열을 올리지요.

 

몇몇 꿀벌들이 죽기는 하겠지만 그 희생으로 몰살을 면할 수 있지요.

참으로 기가막힌 방어 방법입니다.

재래꿀벌은 어떻게 이런 진화를 이루어냈을까요?

 

그 덕에 재래꿀벌을 기르는 사람들은 불침번을 면할 수 있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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