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을 먹기 위해 물을 켜는 녀석들...
"소금 먹은 놈이 물 켜는 법이다" 라는 말이 있죠.
별로 안 좋은 우리 문화의 단면이기는 한데, 어떤 면에선 정감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뇌물을 받아먹거나, 어떤 대접을 받은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답례를 하게 되어 있다는 속담인데요...
곤충 세계에선 소금을 먹기 위해 물을 켜는 놈이 있답니다.
나방이 산비탈 임도에 흐르는 물을 빨아먹고 있는 모습입니다.
배 끝에서 나오는 물방울은 이녀석의 오줌이구요.
한 4~5초 간격으로 이렇게 오줌을 내갈깁니다.
오줌 방울이 바닥에 흐르는 물 표면에 떨어졌다가 다시 튀어오르는, 물수제비 모양을 연출하네요.
이 순간을 촬영하기 위해 무려 한 시간 동안 수백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녀석의 더듬이를 보니 수컷이로군요. 나방 수컷들은 암컷이 내뿜는 페로몬 냄새를 잘 맡아야 하기 때문에 저렇게 더듬이가 발달한 녀석들이 많습니다.
더듬이 아래로 녀석의 대롱 같은 입이 바닥에 닿아 있습니다.
빨대 같은 입으로 쉴 새 없이 물을 빨아들이고는 다시 꽁무니로 오줌을 내갈깁니다.
몇 시간동안을 저러고 있지요. 방해만 받지 않는다면 밤을 지새우기도 할 요량으로 보입니다.
목이 말라서 저렇게 물을 마셔대고 있을까요? 아마도 밤새 마셔대는 물이 저녀석의 몸 부피보다 몇 백배는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이 저렇게 물을 마셔댄다면 아마도 몸 안에 수분이 너무 많아져서 쓰러져 버릴 것입니다.
이 녀석은 왜 이러고 있을까요?
사람이나 다른 동물이나 마찬가지로 신진대사를 위해서 꼭 필요한 성분이 있습니다. 그중 매우 중요한 것이 나트륨(Na)이지요.
사람들은 그 나트륨의 대부분을 소금(NaCl)으로 충당합니다. 고기를 먹을 때나 다른 채소류를 먹을 때도 나트륨이 우리 몸에 조금씩 들어오지요.
그런데 산지에 사는 이런 나방들이 소금을 구할 길이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어떤 녀석들은 다른 동물의 사체나 배설물을 빨아먹기도 하지요.
특히 나비목 곤충들이 다른 동물의 배설물에 않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아한 나비하고 똥하고 어울리다니 잘 용납이 되지 않지만, 녀석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좀 봐줘야 할 것 같네요.
이 녀석은 대놓고 제 손가락 끝에 앉아서 땀을 빨아먹고 있네요.
가끔 생태사진가들이 나비를 손에 올려 놓고 사진을 찍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엔 그게 마냥 신기했는데, 소금기가 많은 땀을 빨아먹기 위해서 사람 손에 앉는 위험도 감수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여러분들도 나비를 만나면 한번 시도해 보기 바랍니다.
우선 자신이 흘리고 있는 땀을 손가락 끝에 잔뜩 뭍힙니다. 그런 다음 나비한테 다가가 손가락을 아주 천천히 들이밀어봅니다.
녀석이 땀냄새를 맏고 손가락의 땀을 한번 맛보고 나면 얼른 손가락 위로 올라탄답니다.
이 녀석은 사람 얼굴까지 공략하는군요.
나방이 물을 빨던 곳을 살펴보니 여기저기에 나방 수컷들이 내가 사진 찍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물을 빨고 있습니다.
왜 수컷들만 이렇게 물을 마셔대고 있는 걸까요?
여기에는 짝짓기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수컷은 짝짓기를 할 때 정포낭을 만들어 암컷에게 전해주는데, 이 정자주머니에 많은 나트륨이 들어 있게 된답니다.
암컷에게 많은 나트륨을 전해주고 나면 자신의 신진대사에 이용할 나트륨은 정작 부족해져서 죽게 될지도 모르니 부지런히 나트륨을 섭취해야 하는 것이지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말입니다.
반면에 암컷은 수컷이 모아서 전해준 나트륨을 몸 안으로 흡수할 수 있으니 물을 먹지 않고 우아함을 유지할 수 있지요.
물론 알을 만들고 다음 세대에 나누어 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도 암컷의 역할이고요.
작고 하찮은 생명체일 것 같은데 이런 치열한 삶을 살아가네요.